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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언어로 소통하는 의사
“엄마, 병원에 토끼가 있어요!”
흰 눈이 소복이 쌓이던 어느 겨울날, 을지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외래. 금방이라도 벽을 뚫고 나올 법한 토끼 한 마리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소아과 외래 벽에 그려진 푸르른 동산에는 이렇게 동화나라가 펼쳐져있다. 을지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아이들의 아픔을 보듬어주는 이수진 교수를 만났다.
[아이들의 언어로 소통하는 의사]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필자가 인터뷰를 기다리던 중 외래에서 발견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아파서 엄마에게 보채고 울던 아이들이 이 교수의 진료실을 나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특별한 곶감이라도 있는 것일까?
호기심에 살짝 들여다 본 진료실에서 이 교수는 겁 먹은 아이의 눈앞에 장난감을 흔들며 진료에 임하고 있었 다. 병원이라는 두려움과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풀린 아이의 모습을 확인한 이 교수는 아이의 통증 부위를 살짝 짚어보았다. 손을 타고 전해지는 이 교수의 따스한 온기에 아이의 표정은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말 못하는 영아에 게는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대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이에게는 나지막하게 묻는다. “아이쿠, 그동안 많이 아팠구나?” 이렇듯 이 교수와 아이들 사이에 형성된 친밀감으 로 진료실의 공기는 더 할 데 없이 화사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웃음이 소아과의 길로 이끌어]
지난 2004년부터 을지대학교병원과 인연을 맺은 이수진 교수는 소아호흡기 및 알레르기 질환 분야를 전문적으로 진료하고 있다. 의과 대학 실습에 이어 인턴으로서 본격적으로 의사로서의 삶 을 시작하게 되었을 당시에는 아픈 사람들을 매일 같이 대하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오는 등 매일 매일이 힘든 시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아픔을 치료해야할 본인에게 아픔이 찾아왔으니, 그보다 힘들 수는 없었을 터.
그러던 중 소아청소년과(당시 소아과) 인턴생활을 시작하면서 피곤에 지친 자신에게 아픈 와중에도 방긋방긋 웃어 주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희망과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아픔이 사라지면 금세 웃음과 활기를 되찾는 아이들과 아픈 아이들을 지켜보며 한줄기의 희망도 놓지 않는 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에 의사로서의 사명의식을 느낀 이 교수는 주저 없이 소아청소년과의 길을 택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없이 행복해요. 아이들 그 자체가 저에게는 큰 에너지원입니다. 앞으로 저는 저의 에너지들이 힘없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할겁니다. 저를 위해서, 또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죠.”
[질병을 보기 전 사람을 먼저 봅니다]
이 교수는 더 넓은 세상에서 견문을 쌓아 아이들의 치료에 도움을 주고자 지난 1년 동안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이 교수는 이번 연수를 통해 낯선 세상에서 새로운 지식을 터득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태했던 자신을 환기시킬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이 교수에게 진료에 대한 철학, 또는 본인이 의사 생활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물었다. “실력 있는 의사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환자와 보호자를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진심으로 대하는 의사가 바로 ‘참 의사’ 가 아닐까 생각해요. 증상과 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먼저 보는 것이지요.”
앞으로도 을지대학교병원의 동화나라 소아청소년과를 찾는 아이들이 이수진 교수를 만나 웃음을 되찾고 희망을 키 울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