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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소우주, ‘뇌’ 속 희망의 등대지기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신경과 장상현 교수
인간 뇌의 평균 무게는 성인 기준 약 1.4kg, 크기는 두 손을 모으면 받칠 수 있을 정도다. 두부처럼 말랑말랑하면서도 작은 이 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이 벌어진다. 막연히 떠올려만 봐도 사고, 감정, 기억, 인식, 마음의 표현, 공부 등과 같은 친숙한 과정들은 뇌가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이 경이로운 기관에는 ‘소우주’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만큼 복잡하며, 신비의 베일에 깊게 쌓여있다는 뜻이다. 소우주 속에서 ‘완치’라는 희망의 불빛을 밝히는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신경과 장상현 교수를 진료실에서 만났다.
신비로운 ‘뇌’의 매력 속으로
장상현 교수에게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물으니,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는 아주 간단명료한 답변이 이어졌다. 학창시절 이과계열의 진로를 고민하던 장 교수는 처음엔 단순히 흥미를 위주로 의과대학을 선택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의학이라는 학문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특히 작지만 큰 ‘뇌’라는 조직에 매력을 느꼈다고.
“뇌라는 세계에서 굉장히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신경계의 복잡한 구조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마냥 신비롭기만 했던 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죠. 그래서 뇌에서 발생하는 생화학적 과정이나 생리적인 작용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질병들의 원인을 좀 더 체계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신경과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때만 해도 신경과라는 과목이 좀 생소할 때였는데, 그래도 저는 뇌에 관한 공부를 계속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뇌전증 완치, 충분히 가능한 이유는
장 교수는 전문의 취득 후 뇌전증학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은사의 영향으로 뇌전증을 세부전공으로 결정했다.
신경세포의 갑작스런 이상흥분 상태에 의해 발생하는 증상을 발작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발작이 특별한 원인 없이 반복적으로 재발하는 경우를 뇌전증이라고 한다. 뇌변 발작을 유발하는 원인이 다양해 원인을 찾기 어렵고, 시도 때도 없이 발작을 일으키다보니 부정적인 시선으로 생긴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는 간질이라고 불렀으나,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용어가 주는 사회적 낙인이 심해 뇌전증으로 개명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진단 자체가 어려웠다보니 발작을 일으키는 증상 자체만으로 무속인에게 의지하기도하고, 유전질환이나 정신질환으로 생각해 잘못된 치료를 받기도 했었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니 발작으로 인한 사고를 당한다거나 머리를 다쳐 환자들이 좋지 않은 상황으로 몰리는 경우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회적, 경제적, 교육적인 측면에서 소외계층이 되기도 했고, 일반대중들은 잘 모르다보니 잘못된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었어요.”
뇌전증은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면 충분히 완치가 가능하다. 과거에는 뇌전증 치료의 목표를 발작횟수를 줄이거나 예방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최근 뇌전증에 대한 진단 및 치료법이 발전함에 따라 완치될 수 있는 질환으로 개념이 바뀌었다.
“어떤 뇌전증이냐에 따라 치료기간은 다 다르겠지만, 보통 약물치료로 70% 이상 완치가 가능합니다. 적절한 약물을 복용해도 잘 조절되지 않는다면 국소적 뇌전증병소를 제거하는 수술적인 치료나 신경중재요법 등을 시행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신약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치료방법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발작이 처음으로 발생했을 때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통한 치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환자와 더 뜨겁게, 스스로 더 치열하게
장 교수는 대전을지대학교병원 QI실장을 맡고 있다. QI란 ‘의료기관의 질(Quality) 향상(Improvement)’을 뜻하는 용어로, QI실은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 및 교직원의 안전을 관리하는 부서다. 안전한 병원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의료진과 지원부서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고 각 부서별 QI활동을 지원하며, 질 높은 의료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다.
“처음 맡은 보직이다 보니, 열심히 알아가고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대전을지대학교병원이 보건복지부 주관 의료기관 인증제에서 3회 연속 인증 의료기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2021년은 의료기관평가 중간현장조사를 무사히 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지역민들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어떤 제도적 부분에 대해 뒷받침해줄 수 있을지를 부서원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지역사회에 공헌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원활한 보직 수행을 위해 ‘알아가고 배워나가는 중’이라고 표현할 만큼, 장 교수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의사다.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본인 스스로를 꾸준히 ‘업데이트’ 시키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더불어 환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맞춤의료’를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의사 본연의 역할 중 하나라는 생각이 자리했다.
뇌전증 환자들은 발작으로 인해 사회생활에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곤 한다. 그러다보니 장 교수는 환자에 관한 안타까운 사례를 접할 때도 많다. 하지만 치료가 잘되어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환자들을 볼 때면, ‘제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타병원에서 뇌전증 진단을 받았는데 치료가 잘 되지 않고 부작용도 생겨났다며 힘겹게 저를 찾아온 환자가 있었어요.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고 싶던 환자였는데, 다행히 저의 치료방침과 잘 맞았는지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겁니다. 몇 년 동안이나 발작을 일으키지 않아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에도 도전하고, 얼마 전에는 결혼해서 아이와 함께 진료실로 찾아왔더라고요. ‘직업적으로 뿌듯하다는 걸 느낄 때가 바로 이럴 때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환자들이 자신을 믿고 선택할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는 장 교수. 자신의 소우주를 온전히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은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장 교수는 오늘도 환자와 더 뜨겁게 공감하고 더 치열하게 연구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