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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년을 위한 행복한 동행
을지대학교병원 신경과 윤수진 교수
치매는 혼자만의 힘으로 이길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치매를 비롯한 퇴행성 뇌 질환은 한번 발생하면 되돌리기 어렵고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항상 밝은 모습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맞는 진심어린 의사, 윤수진 교수를 진료실에서 만났다.
아버님, 어머님이 ‘예쁜’ 천직 신경과 의사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며 산다. 그리고 어린 시절, 누구나 아주 막연하게 ‘난 ○○이 되겠다.’는 꿈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 꿈을 실제로 이루는 사람, 과연 얼마나 될까? 윤 교수는 초등학생이 되기 전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단다. “어렸을 때부터 저의 할머니께서 ‘넌 의사가 될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의사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종두법(천연두 예방 접종)을 보급해 전염병 퇴치에 앞장 선 지석영 선생님과 아프리카 환자들을 사랑한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읽고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병력 청취와 간단한 도구를 가지고 시행하는 신경학적 검사로 환자의 병소가 어디인지, 가능한 질환은 어떤 것들인지 감별 진단을 하고, 치료하는 신경과학을 ‘매우 논리적인 학문’이라고 설명하는 윤 교수는 레지던트 시절 환자의 왼쪽 손을 눈앞에 번쩍 들어 올리면서 “누구 손인가요?” 묻는 질문에 “(자신의 손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 손”이라고 대답하는 환자를 보고 ‘인지장애’라는 세부전공분야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소아청소년과 선생님들은 얘들을 보면 참 예쁘다고 말씀하세요. 그런 것처럼 신경과 의사들은 아버님, 어머님들을 뵈면 참 예쁘시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특히 웃으실 때면 얼굴 가득한 주름이, 선량한 얼굴이, 투박한 두 손이 예쁩니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은 전두측두치매 환자들과는 달리 사람이 ‘달콤’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치의에게 ‘내가 선생님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라고 말씀하시거나 안아주고, 손등에 뽀뽀를 하며 서슴없이 애정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이는 치매를 앓지 않는 일반 어르신들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비록 때로는 버럭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낼지라도 말입니다.”
진료기록이 추억이 되는 순간
치매는 노년층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환이기도 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65세 이상에서 10%, 85세 이상의 절반가량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치매는 질환명이 아니라 증후군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다시 말해 인지기능 장애를 보이는 여러 가지 ‘병’들을 모아놓은 것이죠. 그래서 병마다 치료법이 다르듯이 인지기능 장애를 유발하는 병마다 치료법이 다른데,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경우 병의 진행을 멈추는 방법이 아직 없는 것이 사실이죠. 다만, 조기 진단을 통해 생활습관을 바꾸고 인지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인자를 조절하고 예방하는 방법을 통해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직은 최선의 방법입니다.”
모든 질환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치매의 경우 환자는 물론 가족들까지 고통을 받는다. 치매환자는 병원을 방문할 때 보통 보호자와 함께 오게 된다. 부부지간, 모녀지간의 가까운 가족이 보호자로 오는 경우 뿐 만 아니라, 이웃 주민이나 자녀의 친구, 요양원 관계자 등 함께 방문하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이들을 맞이하는 윤 교수는 이웃 주민이나 동사무소 직원들이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올 때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끼며, 개개인의 사연에 눈물 날 때도 있다고 한다.
“어머님 한 분이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았던 아버님을 모시고 거의 10년 동안 제 외래를 찾아와 주셨어요. 그러다 아버님께서 폐렴으로 돌아가셨는데, 어느 날은 어머님 혼자 찾아 오셨더군요. 어디가 편찮으신지 여쭈었더니, 아버님이 보고 싶어서 저를 찾아 오셨다는 거예요. 허전하신지 외래에서 제 손을 붙잡고 많이 우셨어요. 아버님 살아생전에도 병을 앓기 이전과 다른 모습에 걱정으로 눈물을 쏟으셨는데, 사후에도 그리워하며 저를 찾아주신 거였어요. 남은 가족들이 환자의 죽음을 전하러 일부러 외래를 방문하거나 환자를 그리워하면서 오시는 날은 저도 한참동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의사, 환자, 보호자의 행복한 동행을 꿈꾸며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묻자 윤 교수는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갓 의사가 되어 환자를 만나기 시작했을 당시 윤 교수는 문제의 정답을 풀듯이 진단을 정확히 내리고, 교과서나 논문에서 제시하듯 그에 타당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었단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환자들을 진료하고 의사로서 살아가면서 앞서 이야기한 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느끼게 되었단다.
“의학적 판단에 의한 진단과 치료법을 알려드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특히, 퇴행성 질환과 같은 만성 질환에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환자를 웃으며 맞이하고, 따뜻한 말투와 행동으로 대하는 것,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 교수의 맑은 눈망울만큼이나 여린 마음과 포근한 생각이 녹아든 답변을 듣고 나니 필자의 마음도 절로 훈훈해졌다. 치매, 누구나 ‘힘듦’부터 떠올리는 단어이지만, 윤 교수처럼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려주는 의사와 함께라면 그 또한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윤 교수와 행복한 동행을 이어가고 있는 많은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윤 교수를 진심으로 응원해본다.